작가주의로서의 비디오저널리스트

정태일(KBS '영상기록 병원24시' 연출)

98년 4월 나에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시간으로 남아 있는데 당시엔 추억이라는 느낌보다는 악몽이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 싶다. 당시 나는 KBS 2TV 방영 예정인 "영상기록 병원24시"의 취재를 위해 서울의 모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근 한 달을 지새우다시피 했다. 무엇보다도 나를 짓누르는 공포는 카메라맨과 기타 스텝 한 명도 없이 6mm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1시간 짜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달간의 긴 시간을 수술실과 응급실에서 피비린내와 싸우며 찍은 나의 6mm 첫 프로그램은 보기 좋게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 웬만한 공포영화의 잔학성을 훨씬 능가하는 리얼한 수술장면이 그 원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추억이 되어 버렸지만 당시에 내가 받았던 스트레스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동안 카메라맨들과 작업을 하면서 나름대로 연출 감각을 배웠다고 생각했던 것이 창피했던 시절이었다. 직접 뷰파인더를 통해 본 세상은 너무나도 새로운 것임에는 틀림없었지만 한편으로는 혼돈 그 자체였다. 무엇을 찍을 것인가 보다는 그저 찍기에 급급했었다. 6mm VJ에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바로 좁은 뷰파인더에 자기 자신의 상상력을 가두어 버리는 것이다. 진정한 저널리스트가 무엇이다라는 내 나름대로의 이론은 아직 정립되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끝없는 상상력과 주제의식을 뷰파인더에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소 난해한 표현인 것 같은데 이는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을 따라가기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 신선했던 감각이 이젠 낮은 제작비의 프로그램 제작 방법으로 이용되는 현실이 개탄할 일이다.

시청자들의 눈은 변덕스럽기 그지없는데 원래 시청자들은 끝이 없는 욕심쟁이이자 탐욕적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에 6mm로 제작된 프로그램들에 대해 보여주었던 시청자들의 관심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6mm저널리스트들의 다큐멘터리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연출자의 영상작가로서의 의미를 담아야 한다. 연출자 자신이 원하는 영상을 직접 촬영할 수 있다는 것이 VJ의 가장 큰 장점이자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때로는 카메라맨 흉내내기에 급급한 나머지 연출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6mm다큐멘터리는 현재 많은 프로그램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시사 보도 프로그램 은 물론이고 휴먼 다큐멘터리, 정보, 오락, 최근에는 쇼 오락, 코미디물에서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각각의 프로그램들이 지향하는 목표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시청자들과 TV 모니터의 사이, 즉 다시 말하자면 연출자의 연출의도를 감추기 위한 의도로서도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별한 조명과 기타 장비의 도움 없이 촬영이 가능하도록 설계가 되어있는 덕분에 이제 6mm카메라는 드라마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부분에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위력적인 활약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 나라의 비디오 저널리스의 인지도는 미약한 것 같다. 6mm다큐멘터리가 단순히 제작비를 절감하는 차원에서만 이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방송용 베타 카메라에 민감한 대상들에게는 6mm카메라가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카메라와 피사체간의 거리를 좁힘으로서 보다 진실에 근접한 이야기들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6mm 비디오저널리스트의 힘인 것이다.

눈을 돌려 사회를 바라보면 무궁 무진한 소재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대부분 비디오저널리스트의 작업가능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극복해야할 문제들은 많은데 비디오 저널리스트가 되려면 무엇보다 자기 나름대로의 사회적, 철학적 사고가 형성되어야 하며 단순히 프로그램 디렉터로서의 업무수행 능력으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때로는 기자를 능가하는 관찰력과 지구력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비디오 저널리스트다. 잘 찍은 몇 컷으로 대충 프로그램을 만들 수 도 없다. 찍고자 하는 프로그램이 휴먼다큐멘터리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카메라를 이용해서 글을 쓴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모든 프로그램들이 머리를 쥐어뜯는 골 아픈 프로그램만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5분이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6mm카메라 촬영 법만 배워서는 진정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 질 수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방송 여건이 좋아져서 보다 많은 VJ들의 작품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이 제도적인 프로덕션 시스템과 방송 시스템으로서는 어려울 것이다. 이들의 프로그램을 평가 심의할 수 있는 시스템이 형성되고 보다 자유롭게 방송사와 접촉할 수 있는 문호가 개방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자칫하면 적은 제작비의 싸구려 프로그램이 될 수 도 아예 없지는 않은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비디오 저널리스트의 작품들이 보다 더 다양해지고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6mm카메라로 프로그램을 만들다보면 촬영테크닉도 점점 더 향상이 되는데 어떤 시청자들은 베타로 찍은 것인지 6mm로 찍은 것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6mm 비디오 저널리스트의 작품들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이제 새로운 시각을 끊임없이 카메라로 담아야 한다. 다소 촬영이 거칠었던 초창기 6mm프로그램들이 더 좋은 느낌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항상 새로움과 신선함 그리고 작가주의 적인 탐구정신이 뒷받침 될 때, 우리 나라에 비디오저널리스트들의 미래는 보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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